KMAC 콘텐츠

  • NEWS ROOM
  • BIZ & INSIGHT
  • ISSUE & TREND

KMAC 컨텐츠

KMAC는 각종 정보 및 서비스 제공을 통한 고객만족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 고객센터
  • KMAC 컨텐츠
  • 경영메신저

경영메신저

  • [Case Study] 나이키의 성공 공식, 디지털·윤리경영

  • 첨부파일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자 2021/02/16

  •  

    오늘날 글로벌 기업들은 세계 각지에 공장을 두고 제품을 생산한다. 이때 다양한 기업들이 협력하지만 소비자들은 최종 브랜드만 기억한다.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면 최종 브랜드를 소유한 글로벌 기업이 타깃이 된다. 나이키도 예외는 아니다. 아동 노동이라는 악몽에서 벗어나 디지털경영, 윤리경영으로 턴어라운드하고자 하는 나이키의 사례를 살펴본다.


    지난해 8월 가장 핫한 브랜드로 나이키가 선정되었다는 기사가 나왔다. 연간 1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보유한 해외 온라인 패션 쇼핑 사이트 리스트(Lyst)의 발표에 따른 것인데 젊은이들이 열광하는 오프화이트를 비롯해 구찌, 발렌시아가 등의 브랜드들을 제치고 1위에 오른 것이다. 
    그 비결은 3가지를 꼽고 있다. 첫째, 디지털 부분의 판매량이 75% 증가했다. 이는 지난해 1월 CEO로 취임한 존 도나호의 경력에 기인한다. 그전까지 13년간 나이키를 이끌던 마크 파커는 회사 내에서 ‘전설의 운동화 디자이너’였다. 반면 존 도나호는 IT 분야 출신이다. 컨설팅회사 베인에서 CEO 자리까지 오른 후 이베이에서 10년간 CEO로 일했다. 디지털 분야에서 성장한 만큼 어렵지 않게 디지털 부분의 매출액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둘째, 명품 브랜드와 협업한 한정판 운동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지난해 6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디올과 협업해 만든 ‘에어 조던1 하이 OG 디올 리미티드 에디션’은 추첨 방식을 통해 판매했다. 한정판인 탓에 제품 가격은 리세일 시장에서 바로 6배로 치솟았다. 
    셋째, 인종 차별 이슈에 관련해서 향후 4년간 40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해 관련 기관을 지원하기로 발표했다. 나이키는 브랜드의 슬로건인 ‘그냥 해봐(Just Do It)’를 ‘이번 한 번은 하지 마(For Once, Don’t Do It)’로 바꾸고 흑인 인권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이 캠페인 관련 SNS 게시물은 540만 개의 ‘좋아요’를 받았다.




    매출 극대화의 어두운 단면

    나이키의 역사를 살펴보자. 일본의 기능성 운동화를 수입하는 블루리본스포츠라는 회사를 설립한 것이 1964년이고 나이키 브랜드를 선보인 것이 1972년이다. 길게 보아야 50년 역사의 나이키지만 기업 성공 사례의 단골손님이다. 
    기업 경영의 성공 공식을 가장 단순하게 표현하면 ‘매출은 늘리고 비용은 줄여라’이다. 허망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실제 요약하면 이렇게 나온다. 나이키는 어떠한가. 
    매출은 판매량에 판매단가를 곱한 금액이다.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해서 마이클 조던, 타이거 우즈 등을 후원했다. 스타 마케팅이 성공하면서 매출은 급속히 늘어났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체 생산은 하지 않는다. 디자인과 마케팅만 가져가고 나머지는 동남아시아 저개발국에 외주를 주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바로 이 비즈니스 모델이 나이키의 발목을 잡았다.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의 언론은 나이키가 계약한 공장의 노동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나이키는 하청 공장의 경영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어차피 남의 회사이지 않은가. 나이키가 원하는 것은 결과물, 즉 품질, 가격, 납기 준수였다. 하청업체의 노동 환경은 관심 사항이 아니었다. 
    1993년 7월 CBS 방송은 인도네시아 노동자가 시간당 19센트의 급여를 받고 일요일에만 겨우 쉴 수 있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나이키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이키의 잘못이 아니라 하청업체의 잘못이기 때문이다. 그것까지 일일이 챙기다가는 비즈니스 자체가 쉽지 않을 판이었다. 주가나 매출도 별로 흔들림이 없었다. 
    때로는 화려한 언변, 수려한 미사여구보다 한 장의 사진이 주는 충격이 더욱 강렬할 때가 있다. 미국 사진 잡지 라이프는 1996년 12살의 파키스탄 소년이 축구공을 꿰매는 사진을 실었다. 똘망똘망한 소년의 모습이 잡지를 보는 이의 감성을 자극했다. 각종 매체들이 사진을 갖다 쓰면서 나이키 제품이 아동 노동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보도했다. 
    하루에 2달러씩 임금을 주는 하청업체. 나이키는 그곳으로부터 켤레당 5달러에 납품받아 180달러에 팔았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전 세계 소비자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맨해튼 5번가 나이키 매장 앞에서는 ‘나이키, 우리가 너를 만들었어, 우리가 너를 망가뜨릴 수도 있어(Nike, we made you, we can break you)’라는 피켓을 든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폭스 뉴스 카메라에 잡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나이키의 유명한 광고 문구를 패러디한 ‘그냥 사지 마(Just boycott it)’란 피켓도 있었다.
    나이키는 전문가에게 의뢰해 자체적으로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 또한 악수였다. 앞이 이렇고 뒤가 이렇다면서 변명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 것이다. 여론은 더욱 악화되었다. 
    1997년 11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베트남 공장 내 유해 물질 사건이 터졌다. 나이키 하청업체의 베트남 공장에서 기준치의 177배나 되는 유독 물질 톨루엔이 검출되었다는 기사가 뉴욕타임즈에 실린 것이다. 이 사실 자체도 문제였지만 더욱 큰 문제는 정보 제공자가 누구인가에 있었다. 하청업체를 감사한 언스트&영의 컨설턴트였다. 감사 보고서에 이러한 내용을 기술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언론에 고발한 것이다. 
    이제 나이키는 거짓말을 일삼는 기업이라는 소리까지 듣게 된다. 벼랑 끝까지 몰렸다. 1997년 초부터 판매량,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했다. 나이키 불매 운동이 본격화된 것이다.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

    나이키는 백기를 들고 얽힌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 나갔다. 먼저 외부로부터 전문가를 수혈받았다. 백악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기업과 사회 간의 이해 상충 문제를 해결했던 마리아 에이텔을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1998년 5월 필 나이트 나이키 창업자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하청업체 관리와 업계 노동 관행을 획기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아동 노동과 연관이 있다고 파악된 업체와는 거래를 끊었다. 국제 노동기구가 문제없다고 인정한 업체와만 거래했다. 납품업체에 대한 윤리 규정을 강화하고 투명하게 운영했다. 하도급업체의 이름과 생산 공장 위치를 먼저 공개했다. 문제가 있으면 알려 달라는 의미였다. 
    UN 글로벌임팩트 등 다국적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에도 적극 동참했다. 현장 감사도 강화했다. 자체 인력만으로는 신뢰가 떨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외부 회계기관까지 끌어들였다. 
    2000년대 초반에 접어들면서 문제는 어느 정도 가라앉은 듯했다.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이뤄지지 않았다. 생산단가가 낮은 지역으로 공장을 이전하는 것은 의류업체의 숙명이다. 진출 지역마다 열악한 작업 환경은 항상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나이키 사례가 거론되었다. 나이키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일이었다.
    2005년 나이키는 하청 공장의 실태를 파악했다. 결과는 여전히 충격적이었다. 결과 공개에 대해 애매한 포지션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럴수록 외부 언론으로부터 의혹의 눈길이 커졌다. 1998년의 교훈이 떠올랐다. 무조건 감출 수는 없었다. 있는 그대로 발표하기로 했다. 
    “569개에 달하는 해외 하청 공장을 감사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여전히 노동 착취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남아 지역에서는 4분의 1 이상의 하청 공장에서 신체적 혹은 언어적 학대가 있었습니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라는 서양의 격언은 빛을 발했다. 필 나이트 창업자도 아시아 지역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해 회사가 즉각 대응하지 못했음을 시인했다. 여론은 솔직함에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아동 노동 등 이슈가 발생하면 즉각 대응했다. 
    2012년 국내 기업 중 한 곳도 나이키로부터 거래 중단 통보를 받았다. 국제 NGO 단체들이 기업의 우즈베키스탄 면방직 공장이 아동 노동과 관련이 깊다며 불매 운동을 벌였기 때문이다. 
    아동 인권이라는 초유의 이슈를 겪으면서 나이키도 많은 것을 배웠다.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전개했다. 정부와 제휴해서 미취학 아동을 위한 학교 시설도 만들었고 교육 자재도 공급했다. 과연 나이키는 아동 노동, 아동 인권의 악령으로부터 벗어났는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파키스탄 어린이가 나이키 공을 꿰매는 모습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눈에 선하다. 




    글로벌 공급사슬은 일심동체가 되어야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가,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닌가”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아동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GE의 허드슨강 오염 사건이 좋은 예가 된다. 1977년 폴리염화바이페닐(PCB)의 생산 및 사용이 금지되기 전까지 GE는 이를 지속적으로 배출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1991년 페놀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도 언론은 해외 유사 사례로 GE를 거론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제프리 이멜트 취임 후 2005년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 전략을 발표하면서 친환경 기업, 환경 관련 모범 기업으로 인정받는다. 허드슨강 사건은 조그마한 에피소드 정도로만 다뤄진다. 환경이란 용어에서 GE는 부정적 이미지를 긍정적 이미지로 바꾸는 데 성공한 것이다. 
    나이키도 아동 인권에서 긍정적 이미지를 갖출 수 있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두고두고 나이키의 이미지에 타격을 입힐 것이다. 지속가능경영, 윤리경영의 중요성은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나이키를 타깃으로 했다는 점도 음미해 보아야 한다. 어린아이에게 축구공을 꿰매라고 시킨 것은 파키스탄의 하청업체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수백 개, 수천 개의 하청업체의 이야기를 해보아야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나이키 정도 되는 회사, 업계의 일등 회사를 붙잡고 싸워야 전 세계의 이목을 끌 수 있음을 진작에 알고 있었다. 이는 나이키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2013년 4월 방글라데시의 한 외곽 도시에서 건물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이 건물에 입주한 대부분이 글로벌 의류회사의 하청업체였다. 사고 며칠 전부터 건물에서 균열이 발생하는 등 이상 조짐이 있었다. 건물 내 근무자를 대피시키고 균열의 원인을 찾는 것이 상식이다. 여기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의류 납품 기한을 맞추려는 공장주의 무리한 운영, 안일한 위험의식으로 인해 1000명이 넘는 근로자가 사망했다. 전 세계 여론은 들끓었고 베네통, 망고를 비롯한 27개 글로벌 브랜드는 직격탄을 맞았다. 의류업체가 자사 공장이 아니라고 부인해도 통하지 않았다. 의류업체와 하청업체는 한몸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기업 중에 이러한 구조로부터 자유로운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월마트도 전 세계에서 상품을 조달받고 스타벅스도 중남미에서 원료를 조달받는다. 우리 기업들도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그리고 그 외 글로벌 기업을 꿈꾸는 다른 업체들까지 이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신현암 팩토리8 대표 nexio@factory8.org




    - 출처 : 월간 CHIEF EXECUTIVE 2021년 2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