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2017년 고령사회에 접어들고 2025년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니어 비즈니스가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아날로그의 고령 인구들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혁신 사회에 적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디지털을 학습하기도 어렵다. 고령자들을 위한 테크 비즈니스는 어떻게 구축해야 할까.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그리고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항상 손에 쥐고 있는 고령자들을 보면 이제 세대를 불문하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세상이 왔다는 것을 실감한다. 하지만 과연 모든 고령자들이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고령자의 상당수가 구글링도 하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유튜브와 같은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동영상도 즐겨본다. 하지만 배달 음식을 주문하거나 택시를 부르는 등의 서비스 이용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인터넷 이용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고령자 중 60대는 17.5%, 70대는 11.2%만이 앱을 활용해 쇼핑이나 배달 및 호출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즉 고령자의 압도적 다수가 쇼핑, 배달음식 주문 그리고 택시 호출 서비스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령자들이 스마트폰의 앱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은 한국만의 문제일까.
미국 고령자의 이동의 자유 제한미국의 고령자들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 아니 어쩌면 한국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다.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65세 이상의 고령자들 중 78%가 스마트폰이 아닌 피처폰(2G폰)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앱에 기반을 둔 쇼핑, 배달 및 택시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실정에서 인터넷 기술이 급속히 발전되자 고령자의 삶과 기술의 발전 사이의 갭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이에 대해 노인 정신연구 분야 전문가인 캘리포니아대의 딜립 제스트 교수는 연구 결과 “기술의 발전이 노인을 케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지금 미국 사회가 처한 현실은 기대와는 반대이다.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는 고령자는 일부 계층이고 대다수의 고령자들은 기술의 발전에서 소외되어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또한 미국에서 고령자들이 기술 발전의 혜택을 누리지 못해 난감한 상황에 처한 문제로 ‘이동의 자유’를 꼽았다. 고령자들은 나이가 들면서 운전 감각이 둔화되거나 운전면허 갱신이 어려워져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운전면허를 반납하게 된다. 처음에는 많은 고령자들이 ‘운전을 하지 않아도 조금 불편할 뿐이겠지’라고 생각하지만 막상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나면 자신이 처한 상황이 예상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다.
버스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 않고 택시를 부르는 것도 대부분 앱으로 해야 해서 쉽지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자녀에게 부탁하자니 은근히 눈치가 보인다. 우버와 리프트 같은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도 모두 앱 기반이어서 고령자가 스스로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상황이다.
고령자와 라이드 셰어링 서비스의 연결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84세의 베티 루스도 혼자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는 고령자 중 한 명이었다. 어느 날 자전거를 타다 다리를 다쳐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손자 저스틴이 매번 외출할 때마다 스마트폰으로 우버라는 걸 불러서 타고 가는 것을 보았다.
궁금해 하던 베티는 손자에게 우버라는 차는 어떻게 부르는지 물었다. 저스틴은 할머니에게 우버를 부르기 위해서는 먼저 스마트폰을 사서 앱을 깔고 사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설명을 들으며 베티는 “배우는 것은 귀찮으니 내가 너한테 전화를 하면 네가 우버에 연락해서 차를 보내 달라”고 말했다.
이때 저스틴은 할머니처럼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못하는 고령자로부터 전화를 받아서 우버에 연결해 주는 서비스가 고령자들에게 꼭 필요할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의미는 있지만 과연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는 친구인 데이비드에게 상의했고 둘은 일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지 직접 실험해 보기로 했다. 할머니 베티만을 위한 모의 회사를 만든 후 베티의 전화를 받아 우버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시작한 것이다.
저스틴은 실험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처음에는 베티가 집에서 거는 전화를 데이비드가 받아 우버에 연결해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하지만 몇 번의 과정을 거치면서 핫라인의 형태로 전화를 직접 받아 연결해 주는 방식은 비용이 많이 들어 비즈니스 모델로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 후 저스틴은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데이비드와 상의한 끝에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서비스인 트윌리오(Twilio)를 활용해 자동화된 서비스 기반의 콜센터를 만들어 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결론지었다. 비즈니스 모델의 외형은 비록 아날로그이지만 내적인 부분은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둠으로써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이다. 그리고 둘은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이동 지원 서비스인 ‘고고그랜드페어런트(GoGoGrandparent)’를 시작했다.
고고그랜드페어런트를 한마디로 정의하면 스마트폰 앱을 사용하지 않고 전화를 걸어 우버 및 리프트 같은 라이드 셰어링을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다. 먼저 고령자들은 고고그랜드페어런트가 보내준 안내 엽서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거나 혹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고령자들은 웹사이트를 통해 무료 계정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 전화번호, 집 주소, 운전자가 알아야 할 건강 정보, 결제 카드 정보, 가족 연락처와 같은 필수 사항을 등록한다.
이때 가족 연락처를 제공하는 이유는 가족 구성원이 원할 경우 고령자의 이동 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계정을 만들고 나면 고령자는 바로 필요할 때 언제든지 전화기를 들어 고고그랜드페어런트에 연락해 차량을 부를 수 있다.
고령자 사용경험에 최적화된 서비스고고그랜드페어런트 서비스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고령자가 전화기를 들어 연락하는 과정을 최대한 단순화했다는 것이다. 고령자들은 전화를 거는 일에 익숙하다 해도 번호를 잘못 누르는 경우가 많다.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이 부분에 주목해 고령자들이 집으로 차량을 부를 경우 전화를 걸고 ‘1번 버튼’만 누르면 자동적으로 차량이 고령자의 집으로 보내지도록 했다.
그리고 내린 장소에 다시 차량을 부를 경우는 2번, 만약 다른 곳에서 차량을 부르거나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0번을 눌러 상담원과 연결할 수 있도록 했다. 고령자들이 버튼을 잘못 누를 걱정 없이 하나의 버튼만 누르면 원하는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서비스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저스틴은 고령자들이 차량을 부른 후 언제 차가 도착하고 어떤 차가 자신이 이용해야 하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알려주는 것 또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테스트 당시 할머니 베티가 마트에서 차를 불렀을 때 어떤 차를 이용해야 하는지 몰라 당황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저스틴은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령자들에게 차량 도착 시간, 차의 모델과 색상, 운전기사의 이름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포함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해 보니 여전히 자신이 이용할 차량을 찾지 못하는 고령자가 나타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전화를 건 상태에서 3번 버튼을 누르면 바로 운전기사와 이야기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추가했다. 동시에 가족들이 원하면 고령자가 서비스를 이용할 때 항상 운전기사에 관한 정보 및 이동 상황, 도착 확인 정보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세심한 배려에 기반을 둔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이용 요금은 어느 정도일까. 요금 내역을 살펴보면 ‘우버 및 리프트 이용 요금’에 ‘서비스 이용 요금’을 더한 금액인데 대략 1분에 0.19 달러다.
언뜻 보면 다소 비싸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자신들의 서비스는 단순히 우버를 연결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버의 드라이버 중에서도 우수한 평가를 받고 있는 이들만을 고령자와 연결해 주고 뿐만 아니라 고령자의 신체적 상황을 고려한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령자들이 우버를 이용할 때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해 고고그랜드페어런트가 대신해서 우버와 법적인 해결까지 담당하기 때문에 고령자의 불안감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고고그랜드페어런트를 이용하고 있는 90세의 로즈 아이아코노라는 “차가 필요할 때 전화번호를 누르고 1번을 누르기만 하면 차량이 오고 볼일을 마치고 전화를 걸어 2번을 누르면 신기하게도 내가 있는 곳으로 다시 와주니 이보다 더 편할 수 없다”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처럼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비록 수수료는 받지만 미국의 고령자들로부터 이동의 자유를 지켜주는 수호신과 같은 역할을 함으로써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다.
서비스 제공이 아닌 앱 사용법을 가르쳐라?그러나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서비스에 대해 일부 비판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첫 번째는 고고그랜드페어런트가 고령자들의 이동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표방하면서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 즉 고령자들에게 우버나 리프트를 부르는 앱의 사용법을 가르치려는 노력은 전개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 저스틴은 할머니 베티에게 스마트폰 앱의 사용법을 가르치려고 했을 때를 예로 들며 “고령자들이 필요할 때 이동 서비스를 이용하고자 하는 바람은 그들이 앱 사용법을 습득해서 자유롭게 혼자서 사용하는 데 걸리는 시간조차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절실했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고령자들은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그것을 스스로 능숙하게 사용하기까지는 더 오래 걸린다. 결국 고령자들에게는 그 시간이 젊은 세대들에 비해 훨씬 길게 체감되고 불편함의 강도도 더 크게 다가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고령자의 심리적인 부분을 고려했을 때 무리하게 학습을 강요하기보다는 기존의 상황에서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생각했다.
이밖에도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콜센터를 만들어 우버와 리프트를 연결해 주는 상담원 서비스에 지나지 않느냐는 비판이 있다. 더불어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고령자는 앞으로 점점 늘어날 것이고 또한 스마트폰을 지금처럼 사용할 줄 모르는 고령자들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게 될 텐데 그렇다면 결국 잠재적 수요가 줄어들게 되니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비즈니스 모델은 성립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고고그랜드페어런트를 지지하는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반론한다. 현재 미국에서 스마트폰이 없는 고령자 인구는 전체의 70%가 훨씬 넘는다. 게다가 이들 대다수는 스스로 이동의 자유를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즉 스마트폰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지금의 중년층 대다수가 고령자가 되어 고고그랜드페어런트의 비즈니스 모델이 필요 없어지는 날이 비록 올지라도 지금 당장 많은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오늘의 기회를 포기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가장 적합한 형태의 고령자 테크 비즈니스고령자 테크놀로지 분야의 전문가인 롤리 올로프 에이징 인 플레이스 테크놀로지 워치 설립자는 시니어 관련 테크 시장은 현재 200억 달러 규모의 산업이며 앞으로 비약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현재의 라이드 셰어링 앱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뿐 아니라 가사 도움, 음식 배달 등 다양한 공유 서비스 앱을 동시에 연결해 주는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면 비록 외형은 아날로그이지만 어쩌면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가장 적합한 형태의 테크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스마트폰이 보급된 이후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에 맞춰 항상 배우고 적응할 것을 요구해 왔고 그것을 당연시 여겨 왔다. 하지만 고령자의 입장에서 보면 왜 굳이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며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즉 새로운 무언가를 습득하는 데서 받는 스트레스를 벗어나 그냥 지금처럼 편안하게 하던 대로 살고 싶다는 욕구가 더 강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고고그랜드페어런트는 고령자에 대한 비즈니스 모델의 본질은 ‘변화에 대한 적응’이 아니라 ‘현재의 유지’에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