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은 국가 경제에서 중요한 부문을 차지한다. 2022년 기준 자산 969조 원, 예산 761조 원, 인력 45만 명에 이르는 공공기관은 사회간접자본(SOC), 에너지, 복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국민의 일상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이러한 공공기관 정책과 관련된 주요 이슈를 살펴보면서 향후 주요 정책 과제에 대해 논의해 본다.
이승철 KMAC 고문
공공성은 행정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다. 그러나 그 의미를 명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능견난사(能見難思)다. 눈으로 볼 수는 있으나 만들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공공기관 정책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공공성이란 무엇이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지 명확한 기준을 찾기 어렵다.
과거 공공기관의 연혁 및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공공기관과 공공성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서민경제의 안정 등 명확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시대 상황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에서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다음의 사례는 과거 정부에서 공공성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된 공공기관의 사업들이다.
행정학계에서는 공공성과 수익성 내지 기업성의 균형적인 관점 또는 상보적인 시각에서 공공기관 정책을 수행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아가고 있으나 그 이전에 공공성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공기관 운영의 글로벌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OECD 공기업 가이드라인’에서는 공기업이 사업 수행에 있어 공공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공기업이 시장에 참여하려고 할 때 민간의 경쟁 상대에 대해 우월적인 지위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는 경쟁 중립성을 강조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1조 및 제3조는 자율경영 책임에 대해 선언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뉴노멀 시대의 급변하는 여건 속에서 지속가능한 공공기관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관의 창의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자율경영 체제의 확립이 필수적이다.
이는 기관의 비전, 대내외적인 여건, 기관의 특수성 등은 해당 기관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운법 제정의 기초가 된 ‘OECD 공공기관 가이드라인’에서도 정부로부터의 독립성, 즉 인사, 조직, 사업에 대한 의사결정에 있어 자율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공운법의 제정 취지대로 공공기관이 운영되지 않는 것이 고민이다. 새롭게 취임한 기관장들은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이 현저히 적다는 것을 호소하기도 한다.
사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정부의 통제 및 관리는 더욱 강화돼 왔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자율성을 마음껏 부여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우선 주인-대리인 관점에서 관료적인 통제를 원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추구하는 정책 실현을 위해 공공기관을 통제하고 기대에 부응토록 하는 것이다. 공공 투자 확대, 물가 안정 등 정책 수행, 나아가 국정과제 이행을 위해 공공기관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둘째, 주기적으로 언론에 노출되는 방만 경영이라는 병폐는 자율성 확대를 주저케 하고 각종 규제 지침을 남발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특히 공공 부문 강성 노조의 존재는 이러한 정부의 우려를 심화시킨다.
그러나 이러한 불신 속에서 사전적인 규제를 남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공공기관의 퀀텀 점프를 위해서 실질적인 자율경영 체제로의 과감한 정책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2024년으로 공운법이 제정된 지 17년이 지났다. 그간의 법 운영 경험을 기초로 공공기관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
첫째, 공공기관에 대한 규제 위주의 정책에서 지원 위주의 정책으로 바꿔야 한다. 현재 운영되는 각종 지침에 대한 존치 평가를 통해 불필요한 규제는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또한 미래를 위해 기관의 자체적인 개혁 및 역량을 강화하는 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둘째, 현재 공운법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좀 더 촘촘하게 분류하고 개별 특성을 고려해 맞춤형으로 접근하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상장기관 등 시장에 가까이 있는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해당 산업의 시장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최근 이러한 내용 등을 감안한 공운법의 개정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인사 제도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 경영평가 제도에 대한 혁신적인 변화 등도 기대해 본다.
공공기관 정책 수단 중에서 가장 주요한 부분이 기능 조정이다. 공공성 및 효율성의 가치를 넘어 기관의 지속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며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기능 점검이다.
기능 조정은 공공기관 스스로 하기에 한계가 있다. 관료화된 내부 구조, 노조의 저항, 대내외 기득권층이 있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기능 조정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밖에 없고 이를 규정한 것이 공운법 제14조¹⁾다.
현재 공공기관의 역할 및 기능을 살펴보면 시대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관행적으로 유지되는 것이 많다. 공익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민간과 경합하는 분야, 경영 효율성 측면에서 폐지가 고려돼야 하는 사업들이 여전히 많다. 다음은 그에 대한 예시다.
당초 공공기관이 해당 기능을 수행하게 된 연혁과 이유가 있지만 환경이 변해도 한 번 탄생한 기능은 소멸하기 힘들다는 것이 문제다. 국민경제 전체의 입장, 거시적인 관점에서 기능 조정, 나아가 통폐합 및 민영화까지 검토해야 한다.
기능 조정은 공공기관 혁신의 수단으로서 고도의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며 추진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저항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각 정부 부처의 기능과 연관된 경우 그 난이도는 더욱더 높아진다. 그러나 기능 조정이야말로 공공기관 개혁의 핵심이며 미래를 위한 준비이고 공공기관이 지속가능한 이유이기도 하다. 2024년으로 공공기관 경영평가 제도가 도입된 지 40년이 된다. 경영평가 제도의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행정학에서 많이 논의됐으며 개선 방안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뤄져 있다.
큰 틀에서 보면 경영평가는 성과 관리의 수단으로서 방법론적으로는 기관별 맞춤형 절대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하느냐 그리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누가 다느냐 하는 것이다.
첫째, 독립된 상설 평가 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 평가 시스템의 획기적인 개선은 구조적으로 쉽지 않다. 평가 제도는 평가 기획에서 평가 수행까지 3년에 걸친 주기를 가지고 있다. 평가 기관의 측면에서 보면 담당자 및 책임자가 2~3번 바뀌는 긴 기간이다. 우리나라 관료 제도의 특성상 경영평가 제도의 변화를 기대하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차선으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은 평가 제도를 지속적으로 수행하는 평가 기관의 상설 조직화다. 현재의 1년 단위 평가단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으며 평가의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축적함으로써 평가 제도의 혁신을 더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둘째, 평가 주기와 관련해 다양한 논의가 있다. 많은 전문가가 1년 단위의 평가와 함께 중기적인 성과 평가 방식의 보완을 지적한다. 기관의 업무 성격상 단기간에 성과를 이루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인데 1년 단위로 성과 평가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공공기관은 기관장의 역할이 중요한데 임기 3년인 기관장 입장에서 한 해의 하반기에 취임했다면 자신의 수행 실적을 평가받는 것은 임기 말에 가까운 2년 후가 된다. 기관들의 업무 성격을 고려해 평가 주기를 유연하게 하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논의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셋째, 평가 방식과 관련 기관 맞춤형 절대평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다만 이를 주저하게 하는 전제 요소가 몇 가지 있다. 우선 기관의 성과 측정을 위한 선명한 평가 지표 및 목표치가 수립돼야 하고 엄정한 평가 시스템(평가 기준 및 평가 문화)이 구비돼야 하지만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와 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되기를 마냥 기다리는 것은 더욱 미련한 일이다. 우선은 국제적으로 비교 대상이 있어서 평가 지표 수립 등이 용이한 기관 또는 상장된 공기업 등을 대상으로 5~10개 기관을 선정해 시범적으로 적용해 볼 것을 제안한다. 2010~2012년에 도입 운영한 자율경영 평가 제도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공공기관은 주요 정책 대상이었다. 보수 정부에서는 효율성 및 기업성을 강조한 반면 진보 정권에서는 공공성을 강조했다. 또 대국민 서비스 제고 및 국정과제 수행 등의 명분으로 공공기관의 책임성을 부각하면서 공운법상의 자율경영 체제와 현저히 차이가 있는 정책을 추진하기도 했다.
뉴노멀 시대에는 공공성 대 효율성, 자율성 대 책임성의 낡은 이슈에서 벗어나 좀 더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공공기관이 우리나라의 산업화 과정에서 크게 이바지했듯 다가올 미래에도 그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관련 시장에서의 적극적인 기능을 통해 민간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보다 시장 친화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변화와 개혁을 통해 향후 포스코, KT 같은 슈퍼스타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